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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는] (32)이탈리아군 혼쭐낸 에티오피아 '대륙 자존심'
관리자 2025.04.0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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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는] (32)이탈리아군 혼쭐낸 에티오피아 '대륙 자존심'

송고2025-04-07 07:00

송고 2025년04월07일 07시00분

(서울=연합뉴스) 노재현 기자 = 에티오피아는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한 뒤 유엔 요청으로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지상군을 파병한 국가다.

당시 에티오피아 황실 근위병을 중심으로 편성된 '칵뉴(Kagnew)부대'는 강원도 화천 등 최전선에서 싸우며 눈부신 전과를 거뒀다. 칵뉴부대는 전쟁이 멈춘 뒤에도 1956년까지 한국에 주둔하며 비무장지대 순찰 등 전후 복구를 도왔다.

한국과 뜨거운 우정을 나눈 에티오피아는 6·25전쟁 전에도 이미 아프리카 역사에서 용맹을 과시한 국가다.

19세기 후반 유럽 제국주의 열강이 거대한 아프리카 대륙을 집어삼켰을 때 에티오피아는 라이베리아와 함께 드물게 식민 지배를 당하지 않았다.

라이베리아는 미국에서 해방된 노예들이 아프리카 서부에 세운 국가다. 영국, 프랑스 등 유럽 열강은 미국과 충돌할 수 있다는 우려로 라이베리아를 정복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와 달리 에티오피아는 외세 침략을 당당히 이겨내고 독립을 유지했다. 이 때문에 역사에 대한 에티오피아 국민의 자부심이 크다.

에티오피아 국기
에티오피아 국기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이탈리아는 1894년 12월 식민지 에리트레아 주둔군과 현지 병력을 동원해 에티오피아 제국을 침공했다.

이탈리아군은 전쟁 초기 에티오피아 북부에서 잇따라 승리를 거뒀지만 1895년 12월 에티오피아의 본격적인 반격으로 고전하게 된다.

결국 1896년 3월 초 에티오피아군 주력부대가 있던 티그라이주 아드와를 공격했다가 참패했다. 아드와 전투에서 이탈리아군 측 사망자가 7천명이나 되고 약 3천명이 포로로 잡힌 것으로 알려졌다.

아드와 전투는 유럽 열강이 아프리카를 대규모로 침공했다가 고개를 숙인 드문 사례다.

당시 황제 메넬리크 2세가 이끌던 에티오피아에는 대포, 소총 등 근대식 화기를 보유한 군대가 있었다.

에티오피아는 매년 3월 2일을 공휴일로 정하고 아드와 전투 승리를 기념한다.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의 아드와 승전 기념물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의 아드와 승전 기념물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보복을 벼르던 이탈리아는 파시스트 무솔리니가 집권하던 1935년 10월 에티오피아를 다시 침공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36년 5월까지 전쟁을 벌여 에티오피아 점령에 성공했다.

이탈리아군은 당시 독가스로 에티오피아 민간인들까지 잔인하게 살해했다.

에티오피아는 제2차 세계대전 초반인 1941년 영국의 지원을 받아 이탈리아군으로부터 해방된다.

당시 이탈리아가 행정기구를 통해 에티오피아 영토 전부를 통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식민 지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견해가 있다.

에티오피아는 5년여간 이탈리아에 점령됐지만 끊임없는 저항으로 주권을 되찾은 만큼 유럽 제국주의에 맞서 아프리카의 자존심을 지킨 국가로 평가된다.

nojae@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04/07 07:00 송고 2025년04월07일 07시00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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